조선의 기둥, 조선 건축의 시작과 끝 '경복궁' 1편

조선의 기둥, 조선 건축의 시작과 끝 '경복궁'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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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둥, 조선 건축의 시작과 끝 '경복궁'

어느 나라던 여행을 가게되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나라만의 #랜드마크 를 생각할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 영국 런던의# 빅밴 , 미국 뉴욕의 #자유의여신상 등 대부분 그 나라와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존재한다. 그럼 대한민국 서울의 랜드마크는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경복궁 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조선의 건국부터 #일제강점기 시절의 아픔, #근현대사 를 걸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중심에서 굳건히 대한민국을 상징하며 우뚝 서있는 아름다운 우리 건출물 '경복궁'

지금부터 경복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태조 이성계의 한양천도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는 고려의 수도 개경(개성)으로부터 새로운 수도로 #천도 하길 원했다. 개경에는 이성계를 반대하는 전통세력 ( ( #권문세족 )이 강하게 남아있었고, #풍수지리설에 의해 새로운 왕조에 불길하다는 내용을 듣고 #한양 으로 수도를 천도하게 된다.

한양천도 이후 #종묘 건축을 시작으로 경복궁, 별궁인 #창덕궁 의 건설, 수도의 #성곽 쌓기, 오늘날의 #청계천 인 하수도용 개천공사 등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 중 경복궁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으며, #성리학 을 기반으로하여 건축하였다.

경복궁의 구조, 풍수지리학적 관점

경복궁은 좌측으로는 #인왕산 , 우측으로는 #북악산 의 품안에 안겨있는 듯한 느낌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광화문에서 좀 떨어져 고개를 올려보면 광화문을 중심으로 인왕산과 북악산이 모두 보인다. 마치 인왕산과 북악산도 경복궁의 일부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야말로 경복궁을 지을 당시 건축가와 태조 이성계가 원했던 바가 아닐까싶다.

조선은 당시 중국보다 약소국이었기 때문에 문을 3개 밖에 만들지 못했다. (황제의 나라 중국은 5개의 문을 만들었다.)

그 문이 바로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이다. 이 3개의 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근정전 즉, 왕과 신하가 정무를 보는 공간에 도착할 수있다.

얼마나 가는 길이 웅장하고, 장엄한지는 직접 방문해서 느껴보길 바란다.

3개 문 중에 가장 아름답고, 큰 문은 단연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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