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01월 14일,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 군 사망

[역사 속 오늘] 01월 14일,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 군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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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01월 14일,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 군 사망


현재 우린 선대를 살아가던 어른들과 역사 속 영웅들의 피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이라도 그들의 대가 없는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자 '역사 속 오늘'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중요한 사건과 인물이 있을 때 한번씩 포스팅하려고 한다.

첫 번째 포스팅으로 1987년 01월 14일...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길 기원하며 글을 시작한다.

때로는 한 인간의 죽음이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꿔놓는다. 독재정권 앞에서 한없이 작고 왜소한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항쟁하던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며 민주화운동의 기폭제였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행방 물명 된 후 마산 앞바다에서 주검으로 떠오른 김주열. 그는 죽어 4월 혁명의 도화선이었다. 암 우하던 1980년대, 독재정권의 고문으로 한 줌의 재가 되어야 했던 박종철. 그의 죽음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1987년 오늘, 서울대 재학생이던 박종철군은 서울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숨졌다.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민주화운동에 관여했고, 그 전날 밤 하숙집으로 돌아오던 중 불법 연행되었다. 구타와 폭행에도 불구하고 그는 함께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친구, 선후배들의 소재를 모른다고 진술한다. 이후 수사관들은 물고문을 시작했다. 사지를 수건으로 묶고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머리 처박기를 10시간가량 반복했다. 그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고 한 줌의 재가되어 임진강 찬바람 속에 뿌려졌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박종철 군의 아버지는 아들을 그렇게 임진강에 묻고, 가슴에 한번 더 묻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자체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하던 중 책상을 '탁' 치니 '억'하며 쓰러졌다"

당시 수사결과였다. 하지만 감추기엔 너무 큰 사건이었고 당시 부검의 황적준에게 사인을 심장마비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황적준은 요청을 뿌리치고 물고문 도중 질식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천주교의 사제단 김승훈 신부는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 축소, 조작되었음을 폭로한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당시 모든 민주화세력이 모여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6월 10일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열었다. 국민대회는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호응을 얻게 되어 넥타이부대까지 가세했다. 부도덕한 독재정권에 보내는 국민들의 조롱이자 민주화를 갈구하는 함성이었다. 이후 위기에 몰린 독재권력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을 내놓았다. 

박종철 군 죽음과 1987년 당시 상황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낸 영화 '1987' 이영화를 안 본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보면서 우리의 지난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시대에 어떻게 반영해 발전해 나가야 할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www.youtube.com/watch?v=KxgNQ8cjtfk

 

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8595

 

1987

Daum영화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movi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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