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코로나19, 과거엔 어떤 감염병이 있었을까?

현대의 코로나19, 과거엔 어떤 감염병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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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코로나19, 과거엔 어떤 감염병이 있었을까? #1 흑사병


2019년 11월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만들며 지금까지도 없어지지않고, 인류를 괴롭히는 '코로나바이러스'. 과연 과거엔 이와같은 감염병이 없었을까? 감염병은 단순히 질병에 걸린다는 것만으로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다른사람에게까지 질병을 옮기는 전염성이 무서운 것이다. 블로그의 취지에 맞게 현재의 사건을 가지고 과거엔 어떻게 대처했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유럽인구 1/3 을 지워버린 전염병, 흑사병

14세기 중세유럽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에서 수많은 무역상인들이 유럽으로 건너와 상거래를 시작하였다. 동서양의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당연히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는 활발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1347년 상선 함대 하나가 시칠리아의 메시나항에 당도했다. 이 배의 선원들은 이상한 전염병에 걸려 있었으며 당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사망하였다. 이것이 유럽에 흑사병이 전파된 첫 계기였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중국, 몽골 등이 위치한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시작된  페스트균은 실크로드를 타고 그대로 유럽까지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있다.

흑사병을 일으키는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은 원래 토양 속에 서식하는 세균으로 운동성은 없으나 조건에 따라 변형하기 쉬운 세균이다. 이 세균은 간혹 쥐나 비버와 같은 야생 설치류를 감염시키는데, 설치류에 기생하는 벼룩도 감염된 설치류의 피를 빨아 감염된다. 벼룩은 야생 쥐에서 인간 거주지에 서식하는 집쥐나 곰쥐로 옮겨 기생할 수 있다. 따라서 감염된 벼룩은 집쥐나 곰쥐에게 페스트균을 감염시키고, 감염된 벼룩과 쥐들이 인간 주변에 머무르게 된다. 결국 인간은 감염된 벼룩에게 물리거나 감염된 쥐의 분뇨나 체액 등을 통해서 페스트균에 감염된다. 또한 흑사병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전염이 잘 일어난다. 페스트균에 감염된 환자가 기침 등을 통해 체액을 공기 중에 분출하는데, 그 체액 속에 있던 페스트균이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

흑사병에는 증상에 따라 패혈성 흑사병, 폐 흑사병, 림프절 흑사병의 세 종류가 있다.
가장 흔히 발병하는 흑사병은 림프절 흑사병으로 전체 발병율의 75%에 달한다. 림프절 흑사병은 원인균이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에 있는 림프절을 공격하여 부종을 일으키며, 초기 증상은 38 - 41 °C의 고열과 함께 구토, 두통 을 보여 말라리아로 오인되기도 한다. 증상이 진행됨에 따라 흑사병 특유의 검은 반점, 부종이 나타난다. 림프절 흑사병은 사람간의 직접 전염은 일어나지 않으며 벼룩을 매개로 전파된다. 폐 흑사병은 두 번째로 발병률이 높은 흑사병으로 원인균이 폐를 공격하여 폐부종을 일으키며 사망률이 95%에 달하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발병 후 8일 이내에 80%이상이 사망한다. 패혈성 흑사병은 원인균이 혈액에 직접 침투하여 일어나며 극히 드문 경우에만 나타나나 발병할 경우 단 시간안에 사망하게 된다.

1350년대 유럽의 문화는 흑사병의 영향으로 매우 음울하였다. 문화의 곳곳에서 염세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당시 사람들은 역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교황은 천문학자들에게 흑사병의 원인을 알아내라고 명령했고, ‘1341년 토성과 화성, 목성이 물병자리에 일직선으로 겹친 천체 이변이 흑사병의 원인’이라고 봤다. 온갖 대책에도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묻을 땅이 모자라 교황이 강을 축복한 적도 있다. 강물에 시신을 버리기 위해서다. 신분과 학식의 높고 낮음을 떠나 원인도, 해법도 알 수 없는 떼죽음에 대한 불안감은 얼마 뒤 증오로 바뀌었다. 대상은 유대인. 사회적으로 가장 만만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질시의 대상인 유대인들이 대속양으로 찍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유대인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이 후에 히틀러의 유대인학살까지 이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흑사병을 통해 우린 무엇을 느끼고 대처해야할까.

흑사병이 어떻게,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지만, 전문가들은 몇 가지 무시할 수 없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흑사병이 사라진 것은 순전히 현대화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가정을 내놓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흑사병이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비주의에 입각한 잘못된 치료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신의 뜻을 거역하고 싶지 않았던 독실한 신자들은 병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넋 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과 세균성 질병에 대한 연구가 성과를 발휘하게 되자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흑사병은 의학과 공중보건 발달에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당대의 과학자들은 해부에 심혈을 기울이고 피의 순환을 연구하고, 전염병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위생과 방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격리를 의미하는 ‘quarantine’이란 용어는 15세기 초 베니스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격리 조치가 최초로 시행된 것은 1377년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 해당하는 항구 도시 라구사가 도시를 30일 동안 봉쇄한 때였다. 다른 연구자들은 흑사병이 인체 내 유전자의 진화와 박테리아 그 자체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흑사병의 실체와 자취를 감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어야할 과제가 많음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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